기술집약 시장인 차세대 선박 국산화 개발에 산업계 전방위에서 뛰어들고 있지만, 정작 정부 지원 아래 개발을 완료해놓고도 거래처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 역시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선사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까다로운 조선업 특성상, 기업 주도만으로는 시장 선점에 한계가 있어 상용화 단계에서도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조선해양 분야 연구개발(R&D) 사업에 선정된 ‘LNG 연료 공급 시스템용 저압 LNG 펌프(협상철광주식회사 주관)’와 ‘LNG운반선용 일체형 가스연소·비폭발성 치환가스 시스템(발맥스기술 주관)’은 각각 지난 2022년, 2023년 개발을 완료했지만 정작 아직까지 상용화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두 사업에는 모두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참여했다. 사업에 참여한 기업 관계자는 “실선에 탑재하기 위한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압 LNG 펌프는 결국 지난해에야 정부가 지원 사격에 나섰다. 한국가스공사는 저압 LNG 펌프가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 지난해 현대중공업과 협약을 맺고 실증 지원을 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조선 업계 관계자는 “정부 지원 없이는 국산화 기술도 힘을 쓰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정부가 차세대 선박 시장에 수천억대 예산을 편성하는 등 힘을 쏟고 있지만, 정작 시장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올해 개발 완료 예정인 액화천연가스(LNG) 선박에 특화된 탄소 포집 및 저장(CCS) 기술이 단적인 사례다. 해당 사업은 STX엔진이 개발을 주관하고 현대머티리얼, 케이조선 등 기업과 고등기술연구원, 중소조선연구원,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 등이 참여했다.
선박 CCS 기술은 대표적인 차세대 선박 기술로 꼽힌다. LNG 선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일 수 있어,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 배출 규제 대응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유럽에서도 개발이 진행 중이나 아직까지 상용화된 사례는 없다. 누가 시장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친환경 선박 시장 주도권이 갈릴 것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다만 글로벌 시장에서 선택을 받기까지는 남은 과제가 많다. 우선 선박에서 포집하는 탄소를 실질적인 탄소 감축을 인정할지에 대한 IMO 규제가 정비돼야 한다. 이 단계에서 정부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성엽 국제해사기술센터 선임연구원은 “한국형 선박 CCS 기술이 탄소 감축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IMO에서 한국이 논의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내에서 CCS 장비 설계, 제작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기업들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차세대 선박은 친환경 규제에 디지털 전환 과제까지 더해진 기술 집약적 시장이다. 탄소 배출 규제로 친환경 선박 시장이 열리면서 조선사뿐 아니라 다양한 업계가 잇따라 진출하고 있는 배경이다.
선박용 CCS 기술 개발 역시 현대차 산하 철강 소재 기업 ‘현대머티리얼’이 참여했다. 현대머티리얼 관계자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배기가스 후처리 기술력을 바탕으로 선박 배기가스 포집기술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전력 기반 선박도 늘어나면서 전력 기업들의 참여도 늘어나고 있다. 일례로 전기 추진선 원천 기술 국산화의 일환인 메가와트(MW)급 컨버터 드라이브 개발은 전력기기 기업인 효성중공업을 영위하는 효성이 주관했다 이밖에 한화오션과 선박용 조명을 개발 기업인 대양전기공업이 개발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전기 추진선은 전기를 추진력으로 전환하는 기술이 핵심인데, 이 역할을 하는 것이 컨버터 드라이브다. 다만 현재는 독일 지멘스(Simens), 스위스 ABB, 덴마크 댄포스(Danfoss) 등이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 추진선 건조 자체는 한국 기술력이 높지만 정작 핵심 기자재는 유럽이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LNG엔진에서 발생하는 메탄을 줄이는 후처리 기술에는 한국자동차연구원, 중소조선연구원이 협력하기도 했다.
다만 차세대 선박 기술은 정부 지원 없이는 ‘무용지물’로 전락하기 쉽다는 지적도 있다. 때문이다. 차세대 선박 기술 국산화 사업에 참여한 한 기업 관계자는 “선박에 어떤 기술을 적용할지도 선사들의 검증을 모두 받아야 하는데, 이제 막 개발된 기술을 해외 선사에 요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이 때문에 신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상용화하기까지 수 년을 소요하고, 쉽사리 기술 개발에 뛰어들지 않게 되는 악순환이 있다”고 털어놨다.
산업부 R&D 사업을 담당하는 이희수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 PD는 “조선업은 기술 개발이 끝나더라도 바로 상용화할 수 없는 게 특징”이라며 “트랙 레코드(기술 적용 이력)를 쌓아 선사들 신뢰를 얻어야 하는데 기업이 혼자 주도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출처: [헤럴드경제] 박혜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