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여파'…조선 빅3 핵심기술자 퇴직 3배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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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2013~2014년의 3배 이상인 1091명 퇴직
- 일자리 불안..낮아진 위상 등 영향 미친 듯
- 본격 구조조정으로 핵심인재 엑소더스 가속화 전망

한 조선소 근로자가 벗어놓은 작업모.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최선 기자] A대형 조선사에서 10여 년째 설계를 담당해 온 이모(41) 씨는 최근 참담한 심경을 감추기 어렵다. 조선업계에 불어닥친 구조조정 바람으로 정들었던 동료가 연이어 회사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설계와 연구개발 등 핵심기술을 가진 인재들이 짐을 싸는 모습은 조선업의 암울한 미래를 보여준다고 이씨는 말한다.

그는 “한국에서는 불명예스러운 희망퇴직 대상자이지만 해외 업체에서는 극진한 대우로 모셔가고 있는데 누가 남아 있기를 선택하겠느냐”며 “핵심 인력 유출은 시니어-주니어 간 기술 인수인계를 해치고 조선업 세대 간 기술력 단절을 낳을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조선업 구조조정의 여파로 정든 일터를 떠나는 핵심전문인력이 급증하고 있다. 주채권은행의 구조조정 압박에 의해 일자리 안정성은 낮아졌고 조선업 위상은 갈수록 추락하는 등 악조건이 겹쳐 발생한 현상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들 퇴직자는 중국이나 동남아 조선업체의 이직제의를 받는 경우가 많아 기술 유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4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의 ‘조선산업 기술인력의 인력구조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중공업(009540), 대우조선해양(042660), 삼성중공업(010140) 등 조선 빅3의 설계, 연구개발(R&D), 생산관리 등 조선업의 핵심전문인력 1091명이 퇴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해 조선 빅3업체의 핵심전문인력 총 1만943명 가운데 10%가 회사를 떠난 것이다. 특히 지난해 퇴직한 핵심전문인력 중 정년퇴직한 인원은 단 105명에 불과했다. 90% 이상은 정년 이외의 사유로 회사를 떠났다.

특히 핵심인력의 ‘조선업 엑소더스’ 현상은 더욱 심각해졌다. 2013년 287명, 2014년 340명의 핵심전문인력이 퇴사한 것에 비해 규모가 3배 이상 늘었다. 핵심전문인력 총인원 대비 퇴직자의 비율은 2013년 2.8%, 2014년 3.0%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엔 10%까지 치솟았다.

조선업계 전체 퇴직인력 대비 핵심전문인력의 퇴직 비중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013년 전체 퇴직자 895명 중 32.1%였던 퇴직 핵심전문인력의 비중은 2014년 13.5%(전체퇴직 2511명)으로 축소됐지만, 구조조정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2015년에는 23.8%(전체퇴직 4592명)로 다시 확대됐다.

문제는 조선 빅3가 올들어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착수하면서 이런 핵심인력의 유출 비중은 더욱 높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한국 조선업계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중국을 비롯한 해외 조선업체들이 퇴직 핵심전문인력을 대상으로 기존의 2~3배에 달하는 연봉과 최상급 대우를 보장하며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 관계자는 “업계가 어려워졌고 비전이 보이지 않으니 옮길 곳이 많은 기술인재들이 회사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이들 중 상당수가 외국업체나 선사 등으로 이직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선 빅3는 올해 앞다퉈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창사이래 처음으로 생산직과 대리급 이하 직원에 대한 희망퇴직을 시행하는 등 향후 3000명 인력 감축계획을 추진 중이고 대우조선은 2020년까지 3000명, 삼성중공업은 정규직 30~40%의 인력감축 계획을 갖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핵심인재가 대거 퇴사하기도 했다. 대우조선해양 서울 본사에서 근무하던 해양플랜트 설계 인력 250명중 7월 중순 거제 옥포조선소로 이동하라는 회사 방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퇴사를 선택한 이가 10%대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급격하게 바뀐 근무환경과 처우가 부담으로 작용한 셈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인력감축이 주채권은행이 승인한 자구안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기술인력의 유출 문제에 대한 신중한 검토 없이 단순히 숫자놀음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며 “업계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인력감축을 진행하고 있지만 향후 부메랑을 맞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백점기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조선산업을 지탱하는 역량은 인프라, 기술, 인재, 비전 등으로 구성된다. 이중에 기술과 인재를 놓치는 우를 범하면 1990년대 일본이 밟았던 전철을 밟아 세계1위 자리를 넘겨주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자료=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최선 (bestgiz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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